김성수
[프리즘] 설국에서 보여주는 본질의 의미
지난 성탄절을 즈음하여 전국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을 때는 누구든 화이트 크리스마스 기분에 은근 젖었을 텐데, 수십 년 만에 폭설이라 특히 광주, 전남은 피해가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기후 변화의 영향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이나 일본 등 세계 곳곳에서 눈 폭탄 피해를 보고하고 있다. 온통 눈에 파묻힌 경치가 되면 필자에게는 떠오르는 책이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소설 '설국' 도 그중 하나다. 가와바타는 우리민족을 동방의 등불이라고 했던 인도 시인 타고르에 이어 1968년 아시아 두 번째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노벨상위원회가 '탐미적 동양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는 '설국' 의 유명한 첫 구절은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이다. 탐미적이긴 하다. 따로 작가의 설명은 없지만, 군마현(郡馬縣)에서 니가타현(新潟縣)의 경계의, 시미즈(淸水) 터널이라는 역자의 주석이 붙어있다. 우리나라와 가까운 일본의 니가타나 홋카이도(北海道)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눈의 도시들이다. 특히 홋카이도는 풍부한 먹거리와 자연환경으로 일본인들에게도 손꼽히는 관광휴양지이다.
이런 시골(?)스러운 홋카이도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곳이 있다. 그중에 한곳이 아사히야마(旭山) 동물원이다. 홋카이도 중앙부에 위치한 인구 30만여의 아사히카와(旭川)시의 시립동물원으로 20여 년 전 폐원 위기를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로부터 찾아오는 유명 동물원으로 변화시킨 곳이다. 동물원 운영으로만 화제가 되었던 게 아니라 국가 및 기업의 경영 측면에서도 많은 벤치마킹 자료들이 발표되었다. 또 한군데는 역시 아사히카와의 동쪽 마을, 히가시가와(東川)이다. 사진이 예쁘게 나오는 경치로 고등학교 대상 사진고시엔(甲子園, 일본의 고교야구선수권대회)이나, 국제사진페스티벌을 개최하는 것으로 유명해진 시골 마을이지만, 도쿄 부촌에도 없는 공립 도서관을 비롯한 문화, 교육, 주거 환경 등을 조성하고, 25년째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재정 흑자의 농촌 마을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일본을 추월한 세계 6위-10위권 내의 경제 선진국이다. 그러면서도 전 국민의 반 이상이 몰려 사는 수도권에서의 출산율은 0.62로, 가뜩이나 세계 최저의 출산율인 전국 0.80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불을 넘어도 더 많이 벌기 위해 대기업으로, 일자리가 많은 수도권으로, 대학부터라도 수도권으로 가야 하는 경쟁을 해야 하는 청년들이 자식에게까지 이 경쟁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것 같다. 기성세대 시각이라면 먹고 사는 경제 문제가 해결되면 덩달아 다 해결되어야 할 것 같았던 지역 및 계층 간 균형, 인구감소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민생 문제가 여기에 걸려 있다. 앞에서 얘기한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부원장은 1995년 당시 시 당국으로부터 적자로 인한 폐원을 지시받고 재생을 위한 계획을 직원들과 논의하고 이를 들고 2년간 폐원유예를 승인받았다고 한다. 그 핵심은 자신들의 직업, 동물, 그리고 동물원의 본질에 대한 고찰로부터 나왔다고 한다. 동물을 사랑하는 직업관이야 두말할 나위 없지만, 동물들이 곡예가 아닌 본능을 보여주는 대목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예를 들면 조류인 펭귄이 날아다니는 투명한 물속 터널 아래로 어린이들이 걷는다든가, 산책을 좋아하는 펭귄과 어린이가 눈길을 밟으며 손잡고 같이 입장하는 모습에서 동물원의 업(業)을 재정의한다. 또 한군데 사진 마을 히가시가와의 경우도, 군청 당국이 1994년 반 이하로 감소한 인구의 대책으로 사진 같은 문화사업을 시작했고, 목재가 풍부한 이점을 살려 신생아에게 수제의자를 선물하는 '너의 의자(君の椅子)'라는 프로젝트를 포함, 최고의 육아, 교육, 주거환경을 제공한다. 결국 히가시가와도 농촌 거주와 아이를 키운다는 본질에 대한 고찰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 대자연을 벗하며 자라나는 아이들이 가지는 감성 외에도 학교, 운동장, 도서관 등 도쿄 이상의 교육환경을 제공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인구감소도 일본을 추월했다. 인구 감소와 수도권집중의 본질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김성수 충남대 에너지과학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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